향완의 동체부는 당초문이 시문된 원권문(圓圈文) 중앙에 범자가 은입사 되었다. 그 둘레에는 연화당초문과 모란당초문을 새기고 아래에는 여의두문을 시문하였다. 받침대의 위 아래에는 펼쳐진 연꽃잎과 당초문, 봉황과 운문, 여의두문 등이 배치되었고, 구연부의 전에도 연화당초문이 입사(入絲)되었다. 전의 뒷면에는「강희십삼년갑인삼월일통도사은입사향완중사십오근(康熙十三年甲寅三月日通度寺銀絲香垸重四十伍斤)」이란 명문으로 강희13년(1674)에 제작되었음을 알 수 있고「입사장 장후생(入絲匠 張厚生)」이라는 명문이 선각되어 있다.
이 향완은 고려시대 고배형 청동은입사향완의 전형을 따르는 많지 않은 조선시대 고배형 향완 중 하나로 조성시기와 주성장인·봉안사찰이 명확하게 밝혀진 명문이 남아있을 뿐 아니라 유교가 득세했던 조선시대 후기의 조성임에도 불구하고 대형이라는 점, 은입사기법이 빼어나고 문양이 섬세하며, 몸체와 다리부분을 별도로 주조하여 결합한 새로운 결구방식을 보여준다는 점에서 미술사적 의의가 크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