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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성당 지안(喚惺堂 志安: 1664~1729)은 15세에 용문사(龍門寺)로 출가하여 설제(雪霽)의 법을 이었다. 화엄학으로 명성이 높았던 스님은 1725년 금산사(金山寺)에서 화엄대법회를 열었다. 4년 뒤 법회와 관련하여 무고(誣告)를 받아 호남의 옥에 갇혔다가 곧 풀려났으나, 반대 의견 때문에 다시 제주도에 유배되어 도착한지 7일 만에 병을 얻어 입적하였다.
환성당 진영은 화면 향우측 상단에 영제란을 마련하여 ‘환성당대화상진(喚惺堂大和尙真)’을 기술하였다. 오른쪽을 향하여 반측면 자세를 취하고 의자에 앉아 있으며, 의자의 끝은 용두 장식이 되어 있고, 화문(花文)이 시문된 녹색 법피를 두르고 있다. 백색의 소삼(小衫), 군청색 장삼(長衫)을 입고 적색의 가사(袈裟)를 수(垂)하고 있으며, 가사의 가장자리를 금니화문(金泥花文)으로 시문하고 가사에는 금박으로 환環 장식을 하였다. 왼손은 불자를 들고 오른손은 불자의 술을 쥔 채 팔걸이에 올려져 있다.
진영의 배면 중앙에 범어와 좌우측으로 묵서 화기가 있어 가경4년(1799) 화사 옥인(玉仁)에 의해서 조성되었음을 알 수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