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도사(通度寺)의 삼성각(三聖閣)에 봉안되었었던 삼화상(三和尙) 진영은 1807년에 서봉 인총(西奉印摠)의 증명 하에 양공(良工) 의윤(義允)이 조성한 것이다.
삼화상은 고려 후기의 사회적 모순과 불교계 내부의 갈등을 개혁하고자하는 의지를 보였던 고승들이다. 조선시대의 억불의 분위기에서도 이들 삼화상은, 조사신앙(祖師信仰)의 대상이 되어 여러 곳에 진영이 모셔졌다. 조선전기 삼화상이 조사신앙의 예배대상으로 받아들여지면서 함께 봉안하는 경향이 유행한 것으로 보여 진다. 이들 삼화상은 지공화상(指空和尙)을 가운데 두고 좌측(左側)에 나옹화상(儺翁和尙)을, 우측(右側)에 무학화상(無學和尙)을 봉안했던 것이다.
지공화상(指空和尙)-‘西天國博達坦尊者指空大和尙(서천국박달탄존자지공대화상)’이란 영제(影題)가 쓰인 지공화상의 진영은 의자에 앉아 좌안팔분면(左顔八粉面)의 모습을 그렸다. 붉은 가사에 군청색 장삼을 입고 있으며, 머리에 보관을 쓰고 있는 점이 특색을 이룬다. 여말 선초에 활동한 삼화상 가운데 지공스님은 인도에서 중국을 거쳐 고려에 와서 교화활동을 펼쳤는데, 통도사 사적에 따르면 한때 통도사에도 머문 인연이 있다.
나옹화상(懶翁和尙)-‘高麗恭愍王師普濟尊者懶翁大和尙(고려공민왕사보제존자나옹대화상)’이란 영제(影題)가 쓰인 나옹화상의 진영은 주장자를 들고 의자에 앉아있는 모습인데 전신 좌안팔분면(左顔八粉面)이고, 붉은 가사에 녹색장삼을 입고 있다.
무학화상(無學和尙)-‘漢陽太祖王師妙嚴尊者無學大和尙(한양태조왕사묘엄존자무학대화상)’이란 영제(影題)가 쓰인 무학화상의 진영은 주장자를 들고 의자에 앉아 있는 모습이나 붉은 가사에 녹색의 장삼을 입고 있는 것은 나옹화상과 거의 비슷하게 닮았으나 다만 자세가 우안팔분면(右顔八粉面)인 점만 다르다. 이는 지공화상을 중심으로 좌우로 배향(配享)한 구성으로 말미암은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