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용(單龍)으로 표현된 용두는 종가(鍾架)에 매달도록 되었는데, 상대 사이에는 卍자무늬와 범자(梵字)를 원형 속에 양각하였고 네 곳의 유곽은 별도로 떨어져 있다. 유곽 사이에는 보살입상 4위를 등장시켰으며, 하대에 초화문이 얕게 새겨졌다.
종의 몸체에는「강희이십삼년갑자사월일양산군천성산안적암중종주성…양공통정…화각연희(康熙二十三年甲子四月日梁山郡千聖山安寂庵中鍾鑄成…良工通政…畵刻演熙…)」이라는 명문이 양각으로 표현되었으며, 강희 23년은 숙종 10년(1684)에 해당되어 이 동종의 제작 연대와 제작자를 알 수 있다. 또한 종에 조각과 명문을 새긴‘연희(演熙)’라는 인물은 근수정업왕생첩경목판과 금강경변상목판을 새긴 각수(刻手)와 동일한 인물이라는 점이 흥미롭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