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래 이 배례석은 영산전 앞 삼층석탑 앞에 있었던 것으로 명문내용이 후대에 추가됨으로 그동안 혼란이 있었다. 제작 당시에는 2매의 판석을 연결하여 장방형 구획 내에 당초문과 연화문을 조각한 형태였다. 내부 연화문은복련형식이며,한쪽측면에「太康十一年乙丑二月日造(태강십일년을축이월일조)」라고 음각하였으나 이에 추가하여 '十(십)'자를 '王(왕)'자로, '年(년)'자를 '拜(배)'자에 가깝도록 고침으로서「太康王一拜乙丑二月日造(태강왕일배을축이월일조)」처럼 되어 버렸다.
태강(太康)은 요(遼)나라 도종(道宗)의 연호로서 그 11년은 간지로 을축(乙丑)에 해당되며, 또 태강왕은 신라나 고려의 역대 왕 중에 없기 때문에 아마도 후대에 이 배례석이 임금이 직접 예배를 드리던 것으로 묘사하기 위하여 꾸며진 것으로 추정된다.
이 배례석은 국내에서 그 제작연대를 정확히 알 수 있는 유일한 것으로 배례석 및 불상좌대의 연화문 연구에 귀중한 자료로 평가되고 있다. |